kim24

낚시소설 10호바늘 제11편

kim24

자유게시판

낚시소설 10호바늘 제11편
2017년 10월 02일 신고하기
---------------------11편----------------

기대를 하고 챔질을 했건만, 원하던 손맛을 느끼지 못했다.

볼락 이었다.

봄의 전령사인 볼락이 입질을 한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다른 이들도 내 모습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짖는 표정이 었다.

챔질이 위낙 강했기 때문이었다.

저쪽에 있는 선배도 아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바다속에 있는 고기를 종류별로 내맘데로 잡아낼수가 있는가 말인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초초함이 나를 지배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또 한번의 입질이 왔지만, 역시 잡어 였다.

바람이 한번 불면서,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몇일 간의 강행군으로 몸은 피로해왔고

시간이 화살처럼 가고 있었다.

현재 고기를 잡아 놓은 사람들은 얼마나 느긋하게 이 시간을 즐기고 있을 것인가?

낚시대가 무거워 짐을 느꼈다.

현재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이 5명

선배와 나 그리고 백종구 한민식 그리고 백전 노장 도원규씨 그렇게 5명이다.

그리고 고기를 잡아 놓은 사람은 2명, 선배와 백종구 그렇게 였다.

남은시간은 1시간30분 정도 그안에 감성돔 얼굴을 봐야만이 일본으로 갈수 있는 티켓을 딸수가 잇는것이다.

한민식과 도원규씨도 역시 나같은 마음 일것 이다.

한민식은 작년 부산낚시대회에서 일등을 차지한 사람이었고, 도원규씨는 낚시대를 들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중에 나와 선배가 있다는것 조차도

믿기 힘든 노릇이었으나, 사람의 욕심은 도대체 어디 까지 인가 말인가.

그 사람들을 제치고 일등을 하고 싶은것이 지금의 현실인것이다.

한민식, 도원규씨 백종구는 내 이름을 알기나 알까?

선배의이름을 알까? 낚시로 인해 이런 떨림은 처음 이었다.

초긴장 상태에서 낚시는 계속 진행 되었고, 남은 시간은 한시간 남짖이 남아있었다.

겔러리들의 수근 데는 소리가 신경이 씌였다.

'점마 누고?'

'참이라고 하는갑데예, 대회입상이 없는 사람이라카던데...'

이런 소리들이 귓가에서 들려 왔다.

그런소리는 내게 있어 더더욱 채찍질이 되었다.

사실 선배가 없었다면 이자리에 없었으리라.

선배를 쳐다 보았다. 선배는 낮은 자세로 뒷줄을 잡고 있었다.

또 입질이 온것일까?

그 입질을 나에게 던져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입질을 돈을 주고 살수가 있을까?

별아별 잡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입질을 돈을 주고 산다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1만원? 10만원? 아니면 100만원?

돈을 주고 살수 없는것이 '사랑' 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갯바위에서 느낀다 입질역시도 돈을 주고는 살수 없는법

오로지 실력과 운이 입질을 잡아 내는것이다.

파란 바다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봄 햇살이 따가웠다. 긴장감과 더위가 나를 엄습하면서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가고 있었다.

1분이 지날때 마다 후회를 해본다. 더욱 열심히 할것을...

더욱더 신경을 써볼것을...

발밑에는 망상어들이 떼를 지어 흘린 밑밥을 주워 먹고 있었고,

바다 위에는 갈매기들이 떠다니는 크릴을 조아 먹고 있었다.

파도는 조용히 갯바위를 때리고, 바람은 살갓에 닿는 느낌이 좋을 정도로 불고 있었다.

그나마 바람이 조금 불어서 더위를 조금 식혀 주는듯 했다.

조끼에 찬 시계를 쳐다 보았다. 3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말인가?

선배와 같이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그것이 내맘데로 되지 않았다.

입질을 사고 싶었다. 100만원을 주고라도...

경기가 끝이 났다.

카메라와 기자들의 마이크는 선배와 백종구를 향했다.

패배자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말인가?

감독관이 내게 오더니 슬그머니 말을 한다

'축하해요 일본 가서 봅시다.'

그렇다. 고기를 잡은 사람은 2명 한명이 더 필요 하지만 잡지를 못했다.

그렇다면 준결승때의 고기의 크기로 한명을 뽑는 것이다.

도원규씨와 한민식이는 준결승때 나보다 작은 고기로 결승까지 올라 왔던 것이다.

가끔 티브이를 보면 초보가 고수를 이기는 것이 나온다.

정석도 모르는 미국인 바둑 기사가 한국바둑계의 명인 조 아무개를 이기는것 같이

지금 그런 형상이 벌어진 것이라고 볼수가 있다.

그들은 내가 준결승전에서 그런 고기를 잡았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것이다.

이름모를 선수가 큰대회에서 입상권안에 들면 배가 아프기 나름..

그들의 표정에서 그 아픔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었다.

낚시에 있어 자신감이 중요한긴 하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친다면 자부심이 될것이고, 그 자부심은 위험할수도 있다는것이다.

항상 무엇이든지 겸손하게 대처 하는것이 바다 낚시의 한 부분이라고 할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나와 선배는 겸손 했었나를 뒤돌아 보게 한다.

세계적인 낚시강대국인 일본에 가서 어떤 시합을 할것이며, 어떤 이들을 만나게 될것인지 벌써 부터 마음이 설레 였다.

그렇게 대회는 끝이 났고, 선배와나는 인터뷰 세례를 받았다.

아~ 이런 기분이던가..

낚시잡지에서 보면 꽃가루가 뿌려 지고, 큰 트로프와 상금을 받고 기뻐 하는 사람들을 볼수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항상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것을 당당하게 겪은 것이다.

낚시로 인해 이런 기분을 만끽 할수 있다는것은, 낚시의 또 하나의 행복이 아닌가 싶다.

상금으로 받은돈의 일부분을 협회에 다시 기증 하며, 불우이웃 돕기에 써달라고 하고

그 자리를 마무리 했다.

언제나 낚시를 끝내고 부산으로 돌아 오는길은 차안에서 잠을 자기 일쑤 인데

우리 셋은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하고 오면서 잠을 자지 않았다.

훙분된 기분을 아직 놓고 싶지 않아서 였다.

부산에 와서 알아 보니 일본 대회는 아직 15일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장소는 대마도 였다.

일단 우리는 조용히 일관 했다. 그저 일반 사람들이랑 똑같이 사회생활로 다시 돌아 간 것이다.

난 그날부터 일본 낚시에 대해서 공부 하기로 했다.

선배와 같이 일이 끝난후 집에서 만나서, 이것 저것을 상의 하고, 일본 사람들의 낚시 습관

그리고, 일본 명인들의 비디오등을 관람을 하면서 나름데로의 연구를 하기 시작을 한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이라...

명인들의 바늘 묶는것 까지 놓치지 않고 자세히 보았다.

이번 대회는 한국에서 하는것과는 사뭇 틀리다.

적을 이기지 못하면 돌아 오는 길이 얼마나 처참할것인가?

사실 공중파에서 나오는 국민들의 성원 을 받는 그런 대회는 아니지만

무엇을 하던지 일본 인에게 지면 안된다는 신념을 선배나 나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나라의 국민성이라고 할수도 있다.

뭘 하던지 일본인에게만은....

우리나라가 찌낚시를 도입한것은 일본에서 받아온것이다.

그저 우리는 일명 속구(쳐박기) 등의 낚시로 고기를 잡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낚시 원정을 오면서

부산 형제섬 나무섬에서 낚시를 하고 구멍찌를 몇개 놓아 두고 간것이 구멍찌 낚시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찌낚시라는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전 부터 있었지만 그것은 막대찌를 이용 했으며

체계적인 찌낚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구멍찌가 도입이 되면서 바다낚시의 한 획을 그은것이다.

그리고 90년대가 되면서 반유동이며 전유동이며 체계가 잡히기 시작 했고,

전유동의 낚시가 지금같이 활성화 되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음은 물론이다.

나와 선배는 거꾸로 되집어 가며, 낚시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 시작 했다.

예전에 내 아버님이 돌아 가시기전에 컴퓨터를 밤세워 하는것을 보시고는

'이놈아 그렇게 공부 하면은 판검사 10번도 하겠다'

라는 말씀을 하시었다.

그말씀이 생각이 났다. 지금은 낚시 공부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일본에 가서 선배나 나나 둘중에 한명은 일등을 하리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도 대회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때였다.

선배는 나를 만나 자고 했다.

저녁때 우린 돼지삼겹살 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소주가 두어잔 왔다 갔다 하면서 영호도 그 자리에 합석을 하게 되었다.

선배가 품안에서 무엇을 내어 놓는다

'서희 한테 편지가 왔다. 명함을 한장 주고 왔는데, 전화는 하지 않고, 편지가 왔네,

같이 뜯어 보려고 이렇게 만나자고 했다'

우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깨알 같이 적힌 서희의 편지를 읽어 보았다.

영호가 작은 소리로 읽어 내려 갔다.

'안녕 하세요? 서희에요

잘 계시죠? 전 아저씨들의 은혜를 입고 잘 살아가고 있읍니다.

참으로 암담한 소식을 전해 드리게 되어서 너무도 죄송 합니다.'

영호가 갑자기 눈으로만 편지를 읽기 시작 했다.

-야 뭐레? 니만 읽지 말고 크게 좀 읽어 봐

궁금한 난 영호를 쿡 찌르며 이야기를 했다.

'형님 서희 어머니가 돌아 가셨데요. 그리고 부산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하네요.'

-어허~ 이게 뭔일이여~

선배는 소주를 한잔 들이 켰다.

'내일 가보자.'

소주를 한잔 말끔히 비운 선배가 한마디 하였다.

-내일요?

'그래 내일'

-가서 어쩌게요? 서희 데려 오게요? 뭘 어떻게 하시려구요? 데려와서 작은 마누라라도 만드실 계획 입니까?

'야 임마 누가 작은 마누라 만든다냐? 가서 일단 생각을 들어 보고 부산에는 왜 와서 살고 싶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자세히 들어 보자는 이야기지 임마~!'

-아.. 알았어요.

다음날 우린 선배의 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영호는 일로 인해 동행을 못하였고, 우리 둘만 광주로 출발을 한 것이다.

서희를 만나것은 오후 4정도나 되어서이다.

서희는 우릴 보며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제가 추자도에 있는동안 엄마가 맘고생을 많이 하셨나봐요.

제가 오고 이틀이 지나고 쓰러지셨어요.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그날 저녁을 못넘기시고 돌아 가셨어요'

서희의 흐느낌은 계속 되었다.

우리가 데려다준 그 계림동의 집에서 서희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다.

서희는 집을 정리를 하고, 부산에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더욱 기가 막힌것은 부산에 와서 낚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것이다.

그럴만도 하다.

낚시인으로 인해서 다시 태어 나게 된 서희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갑자기 후배 형권이가 생각이 났다.

총각이며, 부산에서 낚시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서희와 맺어 준다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선배를 쿡 찌르고 밖으로 불러 내었다.

형권이 이야기를 하자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맘에 들어 할까?'

-형권이는 지금 장가 가고 싶어서 죽을라고 합니다.

일단 서희를 서희의 뜻데로 부산으로 이사를 시키고, 원룸을 얻어서 일자리를 찾아 주고요

그리고 형권이를 소개 시켜 줘 봅시다. 혹시 알아요 낚시방 마나님 될지..

우린 서희에게 물어 보았다.

부산에 오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서희는 단호하게 말을 하였다.

'지금 제가 광주에서 무엇을 할수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학교요? 지금 이상태로는 학교 못다님니다.

그렇다고 식구도 없이 혼자서 광주에 남기도 싫어요, 부산에 가서 일자리 구하고, 저를 살린 낚시가 무엇인지 한번 해보고 싶어요'

서희의 말도 일이는 있었다. 그리고 서희는 단호 했다. 그 누구도 서희를 말리지 못했다.

서희는 눈은 초롱 초롱 빛이 나고 있었다.

이 일이 말린다고 될일도 아니었다.

결정은 났다.

일본대회를 마치고 서희가 부산으로 온다는것을 확정 짖고, 이사하는것을 도와주고 집을 알아봐 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광주를 떠났다.

부산에 도착 하자 마자 형권이를 만났다.

형권이에게 자초지정을 이야기를 하니, 그저 함박 웃음을 피우며

'아이고 형님들 형님들 덕분에 장가 가게 생겼습니다.'

-이놈아 니가 잘 해라. 우린 서희의 친오빠는 아니지만 친오빠 처럼 하기로 했다.

너 선배 셩격알지? 서희 한테 잘 못해주면 아마도 너 다리 몽둥이 부러 지는것은 일도 아니다.

'아 걱정 마세요 제가 낚시 꾼이라서 여자를 못만났지, 있으면 얼마나 잘 해주는데요'

사실 그랬다 형권이는 우리 모임에서 착하기로 수문이 나있었고, 낚시점을 운영 하면서 부지런 하기로 정평이 나있던 후배 였다.

하지만 여자 이야기에 좋하 하는 모습은 다 똑같은 남자 였다.

문제는 서희 였다. 서희가 부산에 와서 형권이와 어울릴수 있는가가 문제 였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남여 관계는 부처님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부산의 봄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자들의 화사한 옷차림이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 하였고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고 있었다.

하지만 밤바람은 옷깃을 채우게 하였다.

앞으로 남은 시간 5일~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설레이는 마음을 달레기 위해 낚시대를 닦고, 일본 사람들의 낚시 스타일을 공부 하면서

마음을 추스려 보았다.

어디론가 헤엄을 친다. 헤엄을 치고 또 쳐도, 손에는 끝이 닿지 않는다.

무섭다. 무서운 기운이 체 사라지기도 전에..

저쪽 한 곳에서 은빛이 나에게로 비추어 진다.

그 은빛은 점점 내게로 다가온다.

다가오면서 그 은빛은 형용할수 없을만큼 점점 커져만 간다. 찬란한 너무도 찬란한...

눈이 부시어 잠을 깬다.

꿈이 었다.

그렇게 몇일을 보내고, 일본으로 가는날이 다가 왔다.

부산국제 여객선터미널에 선배와 나와 백종구 그리고, 스탭진들 등 많은 사람들이

서성 거리고 있었다.

일본으로 가는것이다. 일본으로..........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땅으로....

-----------------------12편에 계속------------------



댓글 1

등록하기